인종차별과 역차별 등록 SB
- unprod642
- 2020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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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과 역차별 등록
인종차별과 역차별
인종차별과 역차별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Ⅰ. 서론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황폐화됐다. 카트리나는 2005년 8월말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대형 허리케인이다. 그 피해규모가 큰 것은 미시시피 강과 폰차트레인 호수 등으로 둘러싸여 독특한 지리조건을 갖춘 뉴올리언스였다. 카트리나로 인해 폰차트레인 호수의 제방이 붕괴되면서 도시의 80%이상이 해수면보다 낮은 뉴올리언스의 대부분에 물난리가 났다. 그리고 카트리나의 이재민들은 대부분 흑인이다. 뉴올리언스의 주민 67%가 흑인이다. 미시시피 주에서 큰 피해를 입은 카운티들도 흑인 주민의 비율이 23%에서 85%에 이른다. 비율적으로 피해자 가운데 흑인이 많은 것은 당연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TV에서는 피해자의 대다수가 흑인이라는 사실이 보도되지 않았다. 또한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이 피해를 입은 이유이다. 흑인의 대부분은 도심에 살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빈민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초대형 허리케인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고 또 알았더라도 대피할 차도 없거니와 타지에서 살아갈 길이 막막했기 때문에 떠나지 못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나 초강대국이다. 그러나 미국의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10~15%를 유지해오고 있다. 특히 뉴올리언스는 빈곤상황이 전국평균치보다도 못 미친다.(*참고자료:2004년 미국 센서스 분석) 그러나 또한 왜 이 남동부 지역에 흑인 주민의 비율이 이렇게 높은지 역사적으로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뉴올리언스는 프랑스, 스페인의 식민지 시대와 미국의 독립전쟁,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정착민이 군인, 노예, 민병대, 인디언, 해적들과 섞였다.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성숙하면서 재즈, 독특한 음식, 아름다운 풍광 등이 뉴올리언스의 고유한 정취로 자리 잡았다. 1800년대 면화주요 거래지역이었으며 흑인노예시장이 활발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남북전쟁 이후 인종적으로 경제적으로 분리되기도 했다. 카트리나로 인한 뉴올리언스의 피해의 규모는 현재의 뉴올리언스뿐만 아니라 과거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이번 피해로 인해 미국 사회에 그들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 흑인 차별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더욱 나아가 보면 ‘차별’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까지 접근하게 된다.
차별은 미국 사회 내부나 제3세계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본론에서는 카트리나 피해로 인해 흑인차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차별과 역차별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고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II. 본론
II-1. 차별
미국의 인종차별
카트리나 허리케인이 미국 남부 그 중에서도 뉴올리언즈를 강타했다. 단시간내에 많은 인명피해와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미처 언론이 빠르게 현장 상황을 전달하기도 전에 일반 시민들이 직접 목격하고 보여준 무정부 상태와 폭도로 변해버린 그 처참한 현장을 보면서 과연 미국이란 세계 유일무이의 열강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하였는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들게 된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인종 갈등과 계층간 갈등 그리고 개선되지 않은채 묵인되어온 차별이라는 현실은 예측하지 못한 자연피해와 더불어 해일로 쓸려버린 곳에 남은 추잡한 잔해처럼 드러나게 되었다. 사실 계층간의 갈등은 자본주의의 체제 안정을 위한 조건이다.
자본주의는 노동계급 내부의 경쟁을 야기시킨다. 이 경쟁은 마키아벨리적 음모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이 경쟁은 제한된 자원에 대한 경쟁이다. 그 자원들이란 고용일 수도 있고, 소득일 수도 있으며 또는 현재 세계의 여러 곳에서 경험하고 있듯이, 물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체제의 성격은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세계화를 주도하며 문명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미국에서 일어난 이러한 어두운 현실은 미국내에 존재하는 제1, 제2, 제3 세계를 더 이상 부정할수 없게 만들었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특이현상일까? 다원주의를 옹호하면서 국경없는 자본의 거침없는 흐름을 바라는 세계화 시대인 오늘날을 바라본다면 이러한 미국의 카트리나 사태는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카트리나에서 일어난 일을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미국을 통해서 뿌리깊은 차별과 갈등은 어디서 오는지 살펴봐야만 한다.
또한 이러한 차별을 단순히 백인과 흑인의 인종간 대립이라고 보는 것은 석연치 않다.
1700년대 중반에 뉴욕 식민지에서 노예들의 반란 모의가 있었다. 여느 노예 반란 모의들처럼 이 모의 또한 발생 전에 발각되었다. 이 특수한 음모에 있어서 독특했던 것은 반란자들 중에 아프리카인 뿐 아니라 아일랜드인도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처형 전에, 반란자들에 대한 면접이 실시되어 계획된 봉기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문이 이뤄졌다. 아프리카인들은 백인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고 답했다. 그러한 답은 놀라울게 없었다. 아일랜드인들 또한 심문을 받았다. 그들도 백인 모두를 죽이려고 했다고 대답하였다-즉 미국의 아일랜드인들은 아직 ‘백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100년 후에 발생한 1863년 뉴욕에서 일어난 징병 폭동은 아이러니한 대조를 이룬다. 남북전쟁과 불공정한 징병법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해방된 아프리카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고 집단적으로 린치를 가했던 것이다. 1860년대 중반쯤에 아일랜드인들은 이미 ‘백인’이 되는 순탄한 도정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역사에 있어서 흥미롭게도 아일랜드인이 유럽인으로서 ‘백인’이 될 수 있었으나 즉각적으로 백인으로 간주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우리가 백인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식의 그런 백인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것이고 이러한 ‘백인인 것’은 일반적인 인종 정체성처럼 생물학적인 것에 근거한 것이 아닌 ‘사회-정치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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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분량 : 3 Page
파일종류 : DOC 파일
자료제목 : 인종차별과 역차별
파일이름 : 인종차별과 역차별.doc
키워드 : 인종차별과,역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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