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법가사상 업로드 AE
- unprod642
- 2020년 12월 8일
- 2분 분량
한비자의 법가사상 업로드
한비자의 법가사상
한비자의 법가사상 한비자의법가사상
들어가며
우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상들을 배운다. 성현들의 말씀을 알고 배우며 현실에 알맞게 맞는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서이다. 서양에서의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동양의 유가와 불가, 도가... 이중에서 나는 유가에서도 이단으로 알려져 있는 법가를 택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유가의 장점도 있으나 학연, 지연, 정에 이끌린 행동도 유학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런 배경에서 대통령의 지도력 부재, 능력에 따른 대우와 확고한 법질서가 중요한 이때에 법가를 되새기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과연 법이란 무엇인가? 법은 인간을 구속하며, 강제력이 따른다. 전통적인 맥락에서도 법은 강제력을 생명으로 한다. 따라서 법은 통치수단인 동시에 구속의 수단이다. 강자와 약자 사이의 힘은 우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비가 말하는 법이란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봉건제도 아래서 법은 군주를 비롯한 아주 적은 수의 지배 계급이 통치를 위해 휘둘렀던 수단에 불과했다. 우리는 법의 만능주의를 외친 한비의 냉혹함을 탓하면서도 왜 한비가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배경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론
1. 韓非의 생애와 시대적 상황
한비(韓非, 기원전?~230)는 법가의 대표자이다. 비(非)는 그의 이름이며, 전국시대 한(韓)나라 명문 귀족의 후예이다. 그는 원래 말더듬이였으나 논리적인 문장을 갈고 닦는데 힘써 매우 탁월한 문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는 자라면서 이사(李斯)와 함께 유학자인 荀子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한비가 살았던 당시의 한나라는 전국칠웅 중에서도 가장 작고 약한 나라였다. 한비는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약소국이 겪어야 하는 비애와 굴욕을 몸소 느끼며 살았다. 한비는 한나라 왕이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권력을 장악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데 힘쓰기는커녕, 도리어 실속 없는 소인배들을 등용하여 그들을 실질적인 공로자보다도 높은 자리에 앉히는 것을 매우 가슴 아파했다. 이에 한비는 자주 글을 올려 韓王에 간했으나, 한왕은 이를 채용하지 않았다. 사마천『사기』에는 한비자의 저서 중 「고분」과「오두」가 우연히 진시황의 손에 들어갔을 때, 秦王은 이 책을 읽고 “이것이야말로 바로 내가 기다리던 것이다.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라고 적혀있다. 그리하여 진왕은 급히 군사를 일으켜 한나라를 치고 한비를 강화의 사자로 보내라고 했다. 진왕은 한비와 회견하고 장차 그를 중용하려 했으나, 李斯등이 그의 재주를 시기하여 모함으로써 그를 죽게 했다. 한비는 비록 진나라에서 죽음을 당했지만 그의 법가 사상은 진시황의 통치 원칙이 돼 훗날 진나라의 통치에 기여했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8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한비자의 법가사상
파일이름 : 한비자의 법가사상.hwp
키워드 : 한비자의,법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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